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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시인) / 약속해줘, 구름아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피운다, 삶이라는 직업


커피나무가 자라고 담배 연기가 퍼지고 수염이 자란다, 흘러가는 구름 나는 그대의 숨결을 채집해 공책 갈피에 넣어둔다, 삶이라는 직업


이렇게 피가 순해진 날이면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어, 바르셀로나의 공기 속에는 소량의 헤로인이 포함되어 있다는데, 그걸 마시면 나는 7분 6초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삶이라는 직업


약속해줘 부주키 연주자여, 내가 지중해의 푸른 물결로 출렁일 때까지, 약속해줘 레베티카 가수여, 내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한 장의 구름으로 저 허공에 가볍게 흐를 때까지는 내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내가 어떡하든 삶이라는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내 삶의 유리창을 떼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구름아, 그대 심장에서 흘러나온 구름들아, 밤새도록 태풍에 펄럭이는 하늘의 커튼아




§ ‘직업’이라는 말은 참 무겁다. 직업을 구하는 이에게나 직업을 갖고 있는 이에게나 이 말의 무게감은 천근만근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사람은 평생 동안 대략 23년을 일한다고 한다. 잠자는 시간은 20년, 식사 시간은 7년,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5년, 옷을 입고 치장하는 데 5년, 전화통화에 1년, 잡담 시간은 70일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또 직장에서 아등바등 보내는 것이다.

「약속해줘, 구름아」에서 박정대 시인은 “삶이라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직업은 생계유지를 뜻하니 만큼 삶이 곧 직업이라는 시인의 말은 그럴싸하다. 삶에 직업을 대입하면 출생은 취직일 테고, 임종은 퇴직이 된다. 출생에서 임종까지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삶이라는 직업을 갖고, 생활이라는 업무를 계속 수행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하루의 무게가 버겁다. 속된 말로 잘리지 않으려면 나날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어디서나 점심때면 흡연구역에 모여들어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직장인을 볼 수 있다. 이 시의 화자 역시 한 잔의 커피와 한 개비의 담배로 삶에 숨통을 틔운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남들에겐 휴식인 끽다와 끽연의 순간이 일하는 시간일 테니. 하긴 삶이 곧 직업인바에야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직장인이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듯 화자도 바르셀로나와 지중해의 푸른 물결을 꿈꾼다. 지금 여기만 아니라면 무언가 달라질까. 삶이라는 직업을 바꿀 수 있을까.

흔히 ‘직업’을 ‘밥줄’이나 ‘밥벌이’ 더러는 ‘업’이라고 한다. 밥줄이나 밥벌이라고 할 때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된다. 업은 천직이나 사명이라는 말과 겹친다. 스스로의 업을 소명으로 삼아 만족한다면 작업도 즐거울 것이다. 물론 “밤새도록 태풍에 펄럭이는 하늘의 커튼”처럼 그렇게 마음을 다잡기란 쉽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는 평생 웃는 데 89일을 소비한다. 삶이 곧 직업이라면 즐겁게 일하는 게 바로 인생의 행복인데, 직업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한 장의 구름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너무 많은 것이 딸려 있다.


[사진은 지중해에 면한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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