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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쏟은 커피를 바라보며 / 정호승

바닥에 쏟은 커피는 바닥이 잔이다
바닥에 커피를 쏟으면
커피는 순간 검은 구름이 된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고 비를 바다로 만들듯
바닥도 커피에 젖지 않고 커피를 바닥으로 만든다
바닥을 걷는 흉측한 발들아
물 위를 걸은 예수의 흉내를 내다가 익사한 발들아
검은 구름떼가 흘러가는 바닥의 잔을 들어라
오늘도 바닥의 잔을 높이 들고
남은 인생의 첫날인 오늘보다
남은 인생의 마지막 날인 내일을 생각하며
봄비 내리는 창가를 서성거려라

  ;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단 벌어진 일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누구나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어떤 실수는 후회로 잠을 이룰 수 없게 하지만, 누구도 시간을 거슬러 실수를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 실수를 딛고 나아가는 일뿐입니다.

  실수가 발목을 잡을 때, 그로인해 기분과 자존감이 바닥을 길 때, 스스로의 바닥을 본 것만 같을 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내일은 남은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 실수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거기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실수들을 건너 우리는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바닥을 쳤다, 바닥이 드러났다, 바닥을 긁었다…. ‘바닥’은 곧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 바닥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망망한 허공중을 떠돌거나 영원히 추락을 거듭하겠지요. 바닥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담는 존재의 그릇입니다. 시인은 “바닥에 쏟은 커피는 바닥이 잔”이니 “오늘도 바닥의 잔을 높이 들고” “봄비 내리는 창가를 서성거려라”라고 말합니다. “바다가 비에 젖지 않고 비를 바다로 만들 듯”이 실수가 우리를 성장시키고, 바닥이 우리를 지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아주 큰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를 상상했습니다. 바닥에 뿌리내린 나무는 끊임없이 더 깊은 바닥으로 뿌리를 뻗어갑니다. 나무는 바닥 속에서 얻은 양분으로 하늘 높이, 더 높이 줄기와 잎을 밀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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