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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꽃 그리고 꿀 / 안웅선

  당연한 이야기지만 커피에도 꽃이 핀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커피나무에도 꽃이 핀다. 작고 하얀 꽃이. 손톱만 한 하얀 겹꽃들이 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핀다. 건기의 마지막에 꽃은 피었다가 우기가 오면 꽃이 지고, 작은 녹색의 방울들이 그 자리에 생겨난다. 점점 커지다가 빨갛게 변한다. 커피나무에서 일어나는 일들. 꽃은 버려지고, 열매 역시 버려진다. 커피 열매에서는 꽤나 단맛이 난다. 커피꽃에서도 꽤나 단맛이 난다.

  운남성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 잠깐 들어가는데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물었다. 마시던 차가 얼마 남지 않았었기에 차를 몇 편 부탁했다. 순하게 로스팅한 운남의 커피 역시 그리워지고 있던 참이어서 원두를 조금 부탁했다. 커피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형이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었다. 운남의 고원에서 커피를 키우는 친구가 있다. 올해 처음으로 꽃이 피는 계절에 벌통을 가져다 놓았고, 꿀을 약간 채취했다. 그 꿀을 맛볼 정도는 구해다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커피꽃 꿀이라니. 조금도 예상할 수 없었다. 커피꽃의 향도 모르고, 열매의 맛도 모르고, 말 그대로 태운 씨앗의 맛만 물에 녹여 맛보는 처지에 커피꽃에서 딴 꿀의 맛을 상상하는 것은 옛 사람들이 말만 듣고 코끼리를 상상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형이 전한 말에 따르면 커피 꿀은 상온에서 하얀 크림색으로 굳어 버터나 마가린 같은 질감을 유지한다고 한다. 빵에 발라 먹거나 티스푼으로 그냥 퍼 먹는데 너무 달지 않은 고급스런 단맛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형에게 한 병을 부탁했다. 그리고 형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커피꽃이 몇 번이고 피었다가 졌다. 단것들을 먹을 때마다 혀는 히말라야 마지막 자락의 고원이었고, 하얗게 흩뿌린 꽃이 핀 커피나무 밭이었다. 하얀 달빛을 머금은 하얀 꽃의 마음. 운남의 커피, 그 꽃과 그리고 꿀.

  안웅선
  2010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탐험과 소년과 계절의 서()』(오는 11월 출간, 민음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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