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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연(시인) / 벤자민 카페



<벤야민>이라는 카페에 종종 간다. 카페 주인이 철학자 발터 벤야민을 매우 좋아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처음 벤야민에 갔을 때 주인장의 용모가 살찐 동양의 발터 벤야민을 연상시켜서 하마터면 킥, 하고 웃을 뻔했던 기억이 난다. 카페 규모에 비해 테이블은 세 개밖에 없는데 손님이 없어서 대체로 비어 있는 날이 많다. 나는 보통 그중 제일 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벤야민이 ‘아직’ 좋은 이유는 주인과의 거리감에 있다. 내가 체인점 커피숍을 선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낯익은 얼굴이 되지 않는 공간이 좋다. 정말 사랑하는 몇 사람을 제외하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친절하거나 친해지고 싶지 않다. 소규모 카페의 경우 내 경험상 그게 좀 힘들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자주 들르면 누군가와 인사를 해야 한다거나 나긋나긋해져야 한다는 괜한 의무감이 생긴다. 아마 이 주인장이 나를 단골손님으로 대우하기 시작하는 날이 내가 이곳에 오길 꺼려하는 날이 되겠지. 추측컨대 동네 주민을 제외하곤 나는 그나마 벤야민에 자주 들르는 손님들 중 하나일 텐데. 그에게선 나에 대한 친밀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음에도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으면서 나는 지난 일기들을, 주인장은 태블릿PC로 티브이 쇼프로를 하릴없이 보고 있다. 그의 옆 선반에는 발터 벤야민의 책들이 여러 권 꽂혀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시간을 죽이는 동양의 발터 벤야민의 모습과 대조돼 괴리감이 든다.



사실 여기에 오는 주된 이유가 있다. 친구 금별이가 자주 독일어 공부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독일로 떠나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장소이기도 하다. 벤야민이 금별이의 단골 카페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누가 철학과 아니랄까봐 꼭 너 같은 카페만 온다고 놀렸었다. 벤야민에 올 때마다 금별이와 나눴던 시간이 생생히 떠오른다. 짧게 깎은 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웃을 땐 한쪽 입꼬리가 빼뚤어지는 얼굴. 내가 사진을 찍어주면 수줍게 한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 독일어로 짧은 글귀를 써주던 모습. 내가 선물로 준 책을 유심히 살펴보던 모습. 그런 장면들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이제 나는 여기 혼자 온다. 앞으로도 다른 누군가와 오고 싶지 않다. 기억이 희석될까봐 싫다. 그런 장소들이 있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 공간이 장소가 되었다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되면 그 장소는 다시 공간이 되어 버리는. 나는 여기에 금별이를 붙박아 두기 위해 아무도 데려 오지 않기로 다짐했다. 때때로 내가 앉은 자리에서 혼자 독서를 했을 금별이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럼 그녀가 마치 옆 동네에 있는 기분이 든다. 내게 달려올 수 있을 것만 같다.


금별이가 내게 독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내색하지 않았으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런 심정이었다. 애교를 부리듯이 “나 두고 어딜 가. 절대 못 가. 갈 거면 나 캐리어에 넣어서 가.”라고 했지만, 실은 금별이가 곁에 없는 한국에서의 내 일상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금별이에게 안락을 의존하고 있었다. 금별이는 조용히 희망적으로 살았다. 그게 좋았다. 내 주변에는 슬프고 외롭다 토로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내가 무서웠던 건 금별이가 희망적이어서 독하다는 거였다. 향수는 향수대로 간직한 채 결국 타지에서 안 돌아오고도 남을 아이란 것을 십년 넘게 지켜보면서 알았다. 금별이가 독일로 간 후 우리는 여태 단 한 차례도 연락을 나누지 않았다. 대신 나는 벤야민에 있다.



석지연 / 요즘 시를 안 써서 시인이라 하기 민망하다. 시보다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린다.




#groasting #지로스팅 #커피 #에세이 #커피에쓰다 #커피에달다 #석지연시인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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