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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시인) / 깊이에 대하여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일 수 있다. 인스턴트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않은 깊이에도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해준다. 모두 얕다. 기실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단찮은 깊이까지 사랑한다 해도, 커피는 어두워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실 어둠의 깊이를 얕볼 수 없다. 싸고 만만한 커피지만, 내 손이 받쳐 든 보이지 않는 그 깊이를 은밀하게 캐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걸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 깊이는 상대적이다. 어린아이에게 계곡물은 목숨을 위협할 만할 수심이지만, 어른에게는 기껏해야 무릎이나 허리를 적실만 한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한 컵의 물이 작은 벌레들에게는 깊은 바다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깊이를 수치가 아니라 가치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말 그대로 “물 쓰듯” 낭비되는 물이지만, 사막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에게 물 한 모금은 생명수와 다름없다. 그러니 함부로 깊이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하석 시인의 시 「깊이에 대하여」는 ‘커피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스턴트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라고 묻는 사람에게 화자는 종이컵 속 커피에도 깊이가 있다고, 그 대단치 않은 깊이에 빠질 수도 있다고, 그 대단찮은 깊이를 사랑할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누군가에게는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는 일이 이상하고 또 하찮게 보일 수 있지만, 시인은 이 대단찮은 일에서 한 편의 시를 이끌어낸다.


 



한겨울 꽁꽁 언 손을 녹여주는 종이컵 커피의 깊이를 얕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지치고 힘들 적에 누군가 툭 건네주고 간 커피 한 잔, 이 커피를 마시며 그이의 마음 씀씀이를 헤아릴 때 한 뼘의 종이컵은 얼마나 깊고 따듯할 수 있는가. 바쁜 업무 중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일에 매여 있던 나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몇 분간, 커피가 만들어준 그 휴식의 깊이는 얼마만한 것인가.

시를 읽으며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라는 질문을 여러 가지로 바꿔보았다. “왜 ( )을/를 ( )느냐?”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 )의 깊이’라는 수많은 깊이의 목록도 만들어보았다. 그게 무엇이든, 비록 싸고 만만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품고 있는 깊이는 얕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하물며 괄호 안에 사람을 집어넣는다면 더욱 그렇다. 누추하고 헐벗은 사람이라도 그이가 안고 있을 어둠의 깊이를 “누가 쉬이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모두 얕다.”라는 구절은 타자의 깊이를 쉬이 짐작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일컫는 것이지 않을까.





[인물 사진은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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