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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돼지 혹은 카페멘쉬(Kaffee-mensch) 이력서 (1) / 이현승(시인) ―커피돼지



나는 커피를 심할 때는 거의 1리터까지 마신다. 내가 커피를 더 마시지 않는 것은 더 많이 마시면 맛을 못 느끼거나 맛이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식의 세계는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식가가 미식가일 수 없는 이유는 대식은 맛의 감별보다 우선하는 식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허준이라고, 내 몸을 바탕으로 갖은 레시피를 실험하던 때도 있었으니 정말 커피에 미쳐서 지낼 때는 1.5리터 이상을 마실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많이도 마시는 데에는 직업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각성제가 필요한 삶, 직업. 나는 나처럼 커피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사람을 커피돼지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에 나의 문우들 중에는 커피돼지가 제법 있다.



한참 커피에 미쳤을 때는 직업을 바꿀까하는 생각도 해 봤다. 내 시에는 무반응이던 사람들이 커피에는 반응했기 때문이다. 직업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역시나 사람의 일에는 할 일이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계속 할 것이 있었던 반면, 커피는 내가 가지 못하는 영역이 뚜렷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지로의 꿈>이라는 영화에서 스시 장인 오노 지로(小野二郞)는 직업적 성공의 비결을 일의 기술적인 면에 평생 몰두하고 연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꿈에서도 스시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스시만큼 커피를 좋아하고, 스시는 사먹어야 하지만 커피는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커피에 처음 미치는 사람들이 해보는 ‘짓’들이 있다. 유명한 커피집을 순례하고, 산지별 커피를 대 놓고 맛을 보며, 자신의 커피맛을 높이기 위한 여러 과정을 연마하는 등의 일이다. 이 과정에는 이른바 ‘연장질’도 포함된다. 이건 마치 글을 잘 쓰기 위한 구양수의 삼다(三多)에 버금가는 과정이다. 드립기술을 연마하고, 여러 방법으로 커피를 내려 보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나처럼 자가 로스팅의 과정에 들어서고, 다시 산지별 커피의 블렌딩까지 간다고 해도 진짜 프로가 되려면 자기가 좋은 것 말고, 두루 타인의 취향을 수용하고 계발할 수 있는 잉여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더구나 나로서는 글을 써보았기에 내가 갑자기 만년필을 몽블랑으로 바꾼다고 해서 글의 내용이 바뀔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계속…)



이현승 / 1996년 《전남일보》,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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